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뉴욕 발할라의 SUNY 웨스트체스터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열린 행사에서 부채 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국내 산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거나 빠지지 않기 위해 예산을 줄일 경우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 삭감 가능성이 제기돼서다.
디폴트를 막기 위해서는 미국 의회에서 부채한도 상향을 통과시켜야 한다. 부채한도는 미국 건국이래 78번이나 상향됐으며 모두 통과됐다. 다만 2011년은 협상이 지연돼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미국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는 등 협상이 지연되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18일 월스트리트저널 등 다수 미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공화당)의 부채협상이 소득 없이 1시간 만에 끝났다. 양측 부채한도 협상은 지난 9일에 이어 두 번째다.
미국은 이미 지난 1월 법정 부채한도인 31조4000억달러를 모두 소진한 상태다. 현재 미국은 재무부의 특별조치로 디폴트를 유예하고 있다. 특별조치는 공무원 퇴직 및 장애 연금과 우체국 퇴직자 건강보험 기금 등 연방 공무원들을 위한 정부증권투자기금(G Fund)에 신규 투자를 중단하는 것이다.
특별조치 시행당시 부채한도 상향불발 시 디폴트 발생 시기를 8월초로 예상했으나 최근 두달여 당겨졌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수차례 미국의 디폴트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설 정도다. 옐런 장관은 지난 16일 전미독립지역은행가협회(ICBA)에서도 “시간이 바닥나고 있다”며 “의회가 행동에 나서지 않는 매일매일 미국 경제를 둔화시킬 수 있는 경제적 비용 증가를 경험하고 있다”고 날선 비판을 늘어놨다.
문제는 미국 디폴트 불똥이 우리 산업계에 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19일 공화당이 부채한도 상향 수용을 빌미로 내년 정부 예산 1300억달러 감축과 향후 10년간 4조5000억달러 삭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예산안 삭감에는 의료‧교육‧연구 예산과 함께 IRA 전기차 보조금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안 삭감안에 IRA 보조금 내용이 포함되면 우리 산업계는 손해가 불가피해진다. 완성차기업인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물론이고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이차전지 소재 5사(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KQ:247540), SKC (KS:011790), SKC IET, 롯데에너지머리티얼즈) 등도 현지 공장 투자를 예정 중이거나 확정해 건설하고 있다. 미국이 IRA 법안 발표를 하지 않았다면 물가가 저렴하고 인력 수급이 쉬운 동남아시아나 고객사가 있는 유럽으로 향할 수 있었던 자금이다.
실제 우리 기업들은 IRA 수혜를 받기 위해 지난해 미국에 투자를 집중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만 100억달러 이상 투자를 약속했으며 배터리 합작공장 등으로 추가투자도 진행하고 있다. 이차전지 배터리와 소재기업은 재무부담이 더 크다. 지난 3월 나이스신용평가는 K배터리 이차전지 기업들이 신규 공장 투자 등으로 2024년까지 현금흐름 적자 36조원(배터리 약 8조원, 소재 약 28조원)을 예상했다.
박종일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선임연구원은 “이차전지(배터리) 3사의 부채비율은 2022년 101%에서 2024년 189% 수준으로 증가하고 순차입금의존도는 13%에서 34% 수준까지 확대될 것”이라며 “2차전지소재 3사 또한 부채비율이 318%까지 증가하고 순차입금의존도가 51%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배터리와 소재를 담당하는 기업들이 돈을 벌어도 공장 투자 등으로 잉여현금흐름 마이너스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다행히 투자은행(IB)업계 중론은 바이든 정부가 IRA 법안 축소에 나설 가능성이 사실상 크지 않다는 데 쏠려 있다. 무엇보다 IRA 법안은 내년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최대 치적으로 손꼽힌다. 쉽게 축소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는 얘기다. 프랑스가 지난 16일 IRA와 유사한 녹색산업법 발표하며 경쟁자로 나선 부분도 플러스 요소다.
태양광 산업에는 직접적인 호재도 나왔다. 지난 12일 미국 재무부는 IRA 보너스 혜택으로 청정에너지 시설 건립 시 제공하는 30% 세액공제에 추가로 최대 10% 세액공제 혜택을 더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한화솔루션 큐셀부문에 희소식이다. 미국 가정용 태양광 모듈시장에서 5년 연속 점유율 1위에 오른 한화큐셀은 올초 미국 조지아주에 25억달러를 투자해 태양광 통합 생산단지 ‘솔라 허브’ 건설을 발표했다. 솔라 허브는 2024년 완공을 목표로 구축 중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주 미국 민주당 실무진 선에서 어느 정도 (예산) 삭감 협상이 진행된 것으로 안다”면서도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IRA 쪽에서 (예산) 삭감 등 내용 대부분은 추측성 이야기가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