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상속세에 경영 포기… 중소기업도 대기업도 '벌벌'

MoneyS

입력: 2024년 02월 15일 15:30

과도한 상속세에 경영 포기… 중소기업도 대기업도 '벌벌'

[소박스]▶글 쓰는 순서

①과도한 상속세에 경영 포기… 중소기업도 대기업도 '벌벌'

②'100년 기업' 도약 조건, '유명무실' 가업상속공제 살려야

③"글로벌 스탠다드로 낮춰야" 전문가가 본 상속세 개편 방향[소박스]

한국의 상속세율이 세계 주요국들보다 높은 탓에 국내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영 활동이 제한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주요 회사 지분을 정리하는 대기업 총수일가의 모습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대기업보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들은 경영권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헉 소리 나는 상속세… 삼성·넥슨家 '진땀'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를 부과하는 국가들의 평균(26.5%)보다 두 배 정도 높다. 최고세율이 높은 만큼 세 부담도 강하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다. 최대주주 주식 상속 시 세금이 추가로 붙는 '최대주주 할증평가 제도'가 적용되면 최고세율은 60%까지 오른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선 기존 대주주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점을 감안, 기업인들의 상속세 부담은 사실상 한국이 가장 크다. 최대주주 할증평가도 한국에만 있다.

삼성그룹 총수일가들은 매년 주요 회사들의 지분을 매각하고 있다. 고 이건희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의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서다. 고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지난달 삼성전자 (KS:005930) 지분 0.32%(1932만4106주)를 매각했다.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도 각각 삼성전자 지분 0.04%(240만1223주), 0.14%(810만3854주)를 정리했다. 이 사장은 삼성물산·삼성SDS·삼성생명 지분도 각각 0.65%(120만5718주), 1.95%(151만1584주), 1.16%(231만5552주) 매도했다. 세 모녀가 이번에 매각한 주식 규모는 2조7000억원이 넘는다.

삼성 총수일가가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총 12조원 이상이다. 고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4.18%(2억4927만3200주) ▲삼성생명 20.76%(4151만9180주) ▲삼성물산 2.88%(542만5733주) 등의 계열사 주식(총 18조9633억원 규모)을 재산으로 남겼다. 주식에 매겨진 상속세만 11조366억원이다. 유족들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연부연납제도를 선택, 신고세액(12조원가량)의 6분의1인 2조여원을 먼저 납부하고 남은 10조원가량을 5년에 걸쳐 나눠 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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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 넥슨의 창업주 김정주 전 회장의 유족들도 그룹 지주사 NXC 지분 29.29%(85만1968주·4조7000억원 규모)를 정부에 물납했다. 6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서다. 해당 물납으로 NXC 2대 주주가 된 기획재정부는 공개매각 등을 통해 지분을 정리할 계획이다. 지분 매입 후보로는 자급력이 풍부한 중국 게임회사 텐센트 등이 꼽힌다. 넷마블 3대주주(17.52%)이자 크래프톤 2대주주(13.73%)인 텐센트가 NXC 지분마저 확보할 경우 국내 게임업계에 중국 입김이 강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알짜 기업 경영권, 사모펀드로 넘어가

중소·중견기업들에선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경영권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콘돔 생산업체 유니더스(현 블레이드엔터테인먼트) 총수일가는 5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 때문에 경영권을 2017년 사모펀드 바이오제네틱스투자조합에게 넘겼다. 창업주 고 김덕성 회장의 아들인 김성훈 전 대표가 세금 분할납부를 신청하는 등 회사를 직접 이끌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으나 회사를 포기했다.

글로벌 콘돔 시장 점유율 1위였던 유니더스는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확보한 후 바이오제네틱스, 경남바이오파마, 블루베리NFT, 블레이드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사명을 바꿨다. 사업 다각화를 위한 명분인데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2023년 연간 실적도 적자를 거뒀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 5000~7000원대를 기록하던 주가는 최근 1000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밀폐용기 생산업체 락앤락 총수일가도 상속세 부담 등의 이유로 2017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너티)에 경영권을 넘겨줬다. 광통신 소자 기업 우리로광통신(현 우리로), 가구 업체 한샘, 종자 기업 농우바이오 등도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총수 일가가 경영권 승계를 포기했다. 해당 업체들은 각 분야 국내외 1위를 기록했던 알짜 기업이었다. 경영권 승계가 원만히 이뤄졌을 경우 책임 경영을 기반으로 회사가 더 성장했을 수도 있었는데 아쉬움을 남긴다.

욕실자재 기업 와토스코리아를 이끄는 송공석 대표는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싶지만 세 부담이 커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은퇴하지 못하고 있다. 송 대표는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보려면 피상속인이 사망해야 한다"며 "앞으로 10~20년은 더 살 텐데 세 부담 때문에 그때까지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줄 수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세금을 안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전·사후 승계 조건을 동일하게 하는 등 제도를 합리화 할 필요가 있다"며 "일각에서는 연부연납제도를 이용해 세 부담을 줄이라고 하는데 이자 등을 고려하면 부담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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